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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n: doodle & talk

(잡담) 제목을 뭐라고 해야돼


타장르(농구) 얘기 하다가 문득 왜 내가 그린을 너무 어둡게 묘사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지 알았음. 얘는 정체되어 있던 적이 없는 거야. 너무 모호하니까 표현을 달리 하자면, 감정의 둔화, 무기력, 이런 걸 경험하는 묘사는 나오지 않았음.

물론, HGSS에서의 텐션이 FRLG나 SM에서보다 좀 낮단 말이야? 묘하게 뭔가 억누르고 있는 느낌도 들고. (그게 NPC 입을 빌려서는 쿨하다고 묘사되고 있지만.)

그런데 빽! 할 때는 빽! 하고 소리지르고, 여전히 잘난 체도 조금 하고 있고, 향상심도 보이고 있단 말임. 주관적 기준이지만, 그린의 센치한 정도는 평범한 사춘기 증상으로 해석이 가능한 정도임. 자연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인간 존재란 대체 무엇인가 이 모든 철학적인 질문들이 사춘기 시절에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임. 오히려 이걸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성인이 되어서 뒤늦게 후폭풍이 올 수 있을 정도. 나는 그린이 이걸 빨리, 경험해야 할 발달 단계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경험했기 때문에 느긋한 어른으로 자랐다고 생각함.

물론, 본인에게 중요한 타인이 갑작스럽게 부재하는 상황은… 그거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사실 부정할 수는 없음. 나나미의 입을 빌려서라도 애가 외로움을 탄다는 묘사가 있고, 부모님도 같이 살지 않고, 돌아가셨거나 하는 상황이니 뭔가 '관계'에 있어서는 불안 요소가 있겠다 싶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굉장히 발전지향적인 사람이구나, 그런 느낌? 실패나 좌절감을 발판으로 계속 걸어나갈 수 있는 사람 같아서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음. 최종적으로 FRLG 시절만 해도 레드가 좀 더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듯한 묘사가 많은데(비단 언어적으로 드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것까지 포함해서임), SM으로 가면, 뭐,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 있는 걸 감안해도 그린이 좀 더 유들유들하고 사람 대하는 게 능숙하고 사회적으로 더 잘 다듬어진 사람 같다고 해야 되나? 굳이 깊이 보지 않아도, 누가 보아도 대하기 편한 사람 느낌.

이게 SM에서 레드와의 관계가 재조명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그린에게 있어서 제일 갈등 요소가 되는 레드와의 관계가 좋아보이기도 하고... 일단 너무 신났어 사람이(...) 존나 하이해보임...


이러다 그린 얘기만 할 것 같아서 잠깐 얘기를 돌리면,

타 장르 끌고 오자니 조금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 묘사의 대표적인 사례가 농구 장르의 아오미네란 말임? 얘는 극도의 절망감, 무기력, 감정의 둔화, 비대해진 자아 모두 겪음. 맨 마지막 요인은 크게 언급하지 않겠음, 왜냐하면… 저것 또한 자기 보호 본능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걸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음.

애니웨이, 내가 농구에서 가장 마음 아파하는 캐릭터가 아오미네인데, 쟤가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고, 그게 가속화되었던 원인이 주변에 아이의 멘탈이 흔들리는 걸 통제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고, 아오미네가 겪던 심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해 줄 수 있는 '같은 상황의' 또래도 아무도 없었는데, 본인이 그걸 못 버티고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좋아하던 것도 내려놔버린, 상황이 "현실적으로" 최악이었다고 생각해서임. 차라리 이 시점에는 집착이나 미련의 감정이라도 느꼈다면 다행일텐데, 이 시점에 애가 정말로 망가져버렸음... 목표지향점 조차도 없던 게 큰 문제같음.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대상조차 본인을 포기해버리는? 그 때 아오미네가 겪었던 절망이 너무 눈에 밟힘. 또 얘는 뭔가 성공하고 싶어서, 농구로 프로선수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게 아니잖어. 차라리 성공지향적인 인물이었다면 훨씬 상황이 나았을 거임. 업계 no.1 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 근데 아오미네는 농구를 좋아해서 한 거란 말야? 농구를 향한 마음이 순수했던 만큼 크게 다쳤을 거임.

아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최악이면 오히려 와닿지 않을 때도 있는데(또 다른 장르를 끌고 와서 좀 그런데 예를 들어, 도쿄구울.), 아오미네는 주변 상황이나 애가 겪은 좌절감의 백그라운드가 너무 있을 법하게 최악임. …재능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지만 :(

아무튼, 사람의 인생의 역경이나 아픔의 경중을 따지는 건 좀 맞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내가 멘탈이 크게 무너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오미네라서 그린은 건강한 편이라고 느끼는 거 같음.

오랜만에 덕질 얘기하니까 재밌다… 역시 오타쿠는 덕질을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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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맥락을 벗어나면, 나는 역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캐릭터상은 그린인 거 같음. 애초에 인생캐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덕질을 활활 불태워서 하지 않는 요즘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된다는 점이 재밌음.

서사가 매끄럽고 과함이 없는 데에다가(깊이 따지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를 그대로 응축해놓은 캐릭터에 비중, 푸쉬 제대로 받은 캐릭터이지만 서사가 너무 좋고, 그 서사를 한 작품에서 푼 게 아니라 여러 시리즈에 흩어놓은 데에다가, 은유적인 스토리텔링을 너무 잘 활용해서 있을 법하다는 이야기임. 뭐랄까, 플레이하는 내내 어떨 때는 친근하고, 어떨 때는 얄밉고, 어떨 때는 애틋할 때도 있는데, 결국 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 그, 끝까지 '타인'으로 존재하는 면이 그를 완벽한 캐릭터로 만듦. 요즘 문장력이 많이 달려서(어떤 때는 좋았던 것처럼 말하지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되지만, '그린이라는 인간을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이게 결국 그린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포인트 같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화가 났는지, 즐거운지는 알겠는데 그것 뿐임. 결국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점이 쟤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거 같음.

내가 그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지점을 좋아해서 레드 시점의 연성을 선호하는 편인 거 같기도 함. 원래 게임을 그 시점으로 해서 편한 것도 있지만. 그린 시점의 경우, 뭐랄까,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항상 늘 뭔가 안절부절한? 느낌이 있음. (동숲에서도 그린 부캐 없앴잖아… 내가 그를 움직이는 시점에서 뭔가 '?' 싶은 이질감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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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레드랑 그린은 떨어져 있는 시기가 꽤 있으니까, 매일 보는 것보다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을 거 같음. 어떻게든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타협 지점을 정하면 좋은 거 같음. 안 맞는 부분에 대해 티격태격할 수 있다는 게 이미 안정적인 관계같고(이게 확실히, 둘이 유사가족, 유사형제라 그런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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